스와힐리어로 된 주기도문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로 케냐와 탄자니아,우간다의 공용어 입니다.
스와힐리어 사용 국가
스와힐리어는 스와힐리어로 자신을 나타내는 접두사 ki-를 붙여서 '키스와힐리(Kiswahili)'라고 하고, 스와힐리어권 사람들은 '와스와힐리(Waswahili)', 스와힐리어권 사람들의 문화는 '우스와힐리(Uswahili)'라고 합니다.
■ 스와힐리어의 유래
아랍문자로 표기된 스와힐리어 동전.1882년 잔지바르의 1피살 동전이다.
현대 스와힐리어에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외에도 영어등의 차용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올(의사소통이 안되는 다른 언어를 갖고 있는 상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언어)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지만 학설상 단일 기원설과 비단일 기원설 두가지로 나뉩니다ㅏ.
-단일 기원설
현재 아프리카 자라모 족의 조상이 스와힐리어족이었고,스와힐리어권 해안(우간다,탄자니아,케냐)에 살던 그들의 언어에 아랍과 페르시아 어휘가 섞인것이 지금의 스와힐리어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비 단일 기원설
아랍의 진출로 이슬람화된 해안 민족들이 다른 아프리카 민족들과 구별되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운데 원주민의 언어와 아랍어가 섞어 지금의 스와힐리어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 스와힐리어의 발전과 전파
-교역 언어로서의 대두
아프리카 동부 연안에 포르투갈이 내항했던 16세기 초반에 스와힐리어로서 어느정도 갖추어진 언어 체계가 성립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범위는 그리 넓은 것이 아니었는데 포르투갈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16세기부터 동부 해안 전체로 스와힐리어가 확산되게 됩니다. 포르투갈이 이 지역에서 아랍인들을 몰아냄에 따라 지금까지 이 지역의 상업용 언어였던 아랍어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대신에 스와힐리어가 상업언어로 대두되었습니다. 스와힐리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대도시였던 잔지바르를 중심으로 세력이 확대된것도 스와힐리어 확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7세기에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는 오만의 야아리바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지만,얼마 후 오만 본토에서 큰 혼란이 발생해 강력한 통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화적인 영향은 크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내륙으로의 전파
이렇게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해안도시들의 모국어가된 스와힐리어는 1800년 무렵부터 내륙으로 전파가 시작됩니다. 해안과 내륙의 교역이 활발해졌고 특히 잔지바르 시티에 거점을 두고 있던 오만 왕국과 사이이도 왕국사이에 낙타를 이용한 캐러밴 교역이 급증하게 됩니다. 원래 스와힐리어는 아랍 문자로만 쓸수 있었지만 1880년대에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스와힐리어 라틴 문자 표기가 개발되면서 이 지역이 이슬람교와의 유대 관계가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스와힐리어는 순수한 교역용 언어가 되었으며 스와힐리어권 사람들은 기독교등도 받아들이기 쉬운 토대가 형성됩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잔지바르 술탄 국가 령이었던 동부 해안은 영국과 독일의 식민지로 분할이 되고 양국 모두 모국어로서의 스와힐리어를 중시하고 적극적인 보급을 실시합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 령이었던 탕가 니카가 영국령이 되면서 영국은 이 지역에서도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표준어 정립
하지만 이시기까지 스와힐리어는 방언이 대부분이었고, 표준어가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28년 6월 몸바사에서 동아프리카의 식민지 간의 회의가 진행이 되어 표준어 채용을 공식 결정했습니다. 표준어 후보는 케냐 몸바사 방언과 잔지바르의 방언이었지만 이슬람과 연관 되어있던 몸바사 방언에 비해 교역용 언어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잔지바르 방언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되어 잔지바르 방언을 바탕으로 한 표준어 제정이 시작되었고 스와힐리어의 사전편찬 역시 이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