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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대한민국과 미국의 피로 맺은 동맹!한미 군사 동맹에 대해 알아보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은 1953년 7월27일 한국 전쟁 휴전후 1953년 10월1일에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서명을 하고 군사 동맹을 맺는 것에 동의 했습니다. 두 국가는 이 동맹을 '피로 맺어진 관계'라는 의미로 혈맹이라고 불렀습니다.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 지위 협정에 따라 약2만 9천명의 주한 미군이 대한민국에 주둔 중이기도 합니다.



1961년 5.16군사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미군을 돕기 위해 대한민국 국군(육군과 해병대)를 파병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 국군은 미군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의 외국 군대를 유지했고, 미국은 대한민국의 베트남 파병에 보답하는 의미로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증가시켜 대한민국의 고도 경제 성장, 일명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중인 1968년 3월16일에 미군이 미라이 학살을 일으켰을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국군도 1968년 2월 12일 퐁니 퐁넛 마을 학살 사건과 같은 전쟁 범죄를 일으키고 맙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전쟁 범죄는 베트남 전쟁 종결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 화근을 남겼습니다.


한편 한미 동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한미 관계를 악화일로로 치닫게 만든 사건들이 있었는데 1972년 10월 27일 유신 쿠데타로 권력을 강화한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대한민국의 핵무장을 원치 않았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간의 외교문제로 발전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이던 1970년대에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와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기업가인 박동선이 미국의 전현직의원 32명에게 85만달러(약10억원)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코리아 게이트 사건으로 기소가 되기도 했었고, 2002년 6월13일에 발생한 미군 장갑차에 의해 중학생이던 신효순,심미선 학생이 압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한민국 여론이 반미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2003년의 이라크 전쟁당시 대한민국 국군을 2004년에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파견하기도 했고, 2008년 2월25일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은 2009년에 향후 방위 협력을 위한 동맹을 전망하기로 기약했으며,  2010년 6월27일에 오바마 대통령과 2012년 14월17일이 었던 전작권 전환일을 2015년 12월로 연기를 했습니다. 박근혜 전대통령 역시 그 기조를 이어받아 2020년 중반까지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지식으로 킬링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