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
성직자서로 신도들로부터 고해를 듣던 마틴 루터는 평신도들도 죄의 고뇌를 안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루터는 당시 한창 독일에서 판매되고 있었던 면죄부를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알브레히트
루터는 몰랐으나, 유럽 전역에서 특히 독일에서 대대적으로 면죄부가 판매된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마인츠 대주교였던 알브레히트의 야망으로부터 촉발된 것이었는데 그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마군주에 대한 선거권한이 있는 제후)인 요아힘 1 세의 동생으로 처음에는 마그데 부르크 대주교정도와 하루바타트 주교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동생의 도움을 받아 선제후이자 정치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마인츠 대주교정도의 지위까지 얻으려고 했습니다.
야고프 푸거
하지만 한사람이 여러개의 주교정도 자리를 갖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알브레히트는 로마 교황청으로 부터 특별 허가를 얻기위해 거액의 헌금을 하기로 마음 먹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궁리끝에 푸거 가문의 조언을 받아 비책을 마련합니다. 그것은 자기 영내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헌금을 위한 명목으로 면죄부 증서 판매에 대해 로마교황청으로 부터 독점권을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면죄부 증서
1517 년 , 알브레히트는 면죄부 증서 판매에 돌입했고, 요한테첼은 면죄부 판매 설교사로, 도미니쿠스회원들은 면죄부 판매 촉진 전도사로 임명되었습다. 알브레히트는 면죄부가 한장이라도 더 팔리면 그만큼 자신의 수익이 되거니와 로마 교황청도 많은 헌금을 받게될테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알브레히트의 의도대로 면죄부는 날개 돋힌듯이 팔려나갔고 사람들은 면죄부에 대해 설교하는 테첼의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원래 면죄부는 헌금이라는 선행으로 죄를 경감받는다는 의미로 판매가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알브레히트의 면죄부에 대해 루터가 무엇보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면죄부를 판매 하면서 선전했던 '면죄부를 구입하면 죽어 연옥에 있는 자의 영혼까지도 속죄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연옥 입구
연옥의 영혼이 본래 죄의 용서에 필요한 성사의 수여와 회개없이 면죄부만 구입하면 속죄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루터는 면죄부 행위의 남용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연옥 영혼의 면죄부 여부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며 의문을 제기하는 신학자도 많았습니다. 1517 년 10 월 31 일 루터는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판매 행위에 남용이 보인다는 서한을 보냈는데 이것이 '95개조 논제'입니다. 이 논제는 일반 서민들은 읽을 수 없는 라틴어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루터는 이 면죄부 판매 문제를 순수하게 신학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