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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원령공주의 뒷 이야기.


원령 공주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1997년 7월12일에 개봉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 구상에만 16년, 제작기간은 3년인 대작이었고 흥행 수입 193억엔(1950억원),관객수 1420만명을 기록하며 당시 일본 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원령공주 이전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장편 애니메이션들을 대략 5만에서 7만 정도의 프레임 수로 제작 했지만 본작에서는 14만장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미야자키는 성공하지 못하면 지브리가 끝장날 수있다라는 각오로 엄청난 노력과 물량을 본작에 투입했다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이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약 11.2만장)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약14.8만장),'벼랑위의 포뇨'(약17만장)도 거의 같은 프레임이거나 그 이상으로 제작이 되며 결과적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 체제를 쇄신하게 됩니다.


또한 원령공주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마지막으로 셀화와 물감을 사용한 작품이 되었습니다.(일부 3DCG 로 만든 장면과의 합성이나 제작의 일정 막바지에 디지털 채색이 일부 사용 되었음)이후 지브리 작품은 밑그림을 컴퓨터로 가져와 디지털로 채색하는 풀 디지털 작업을 채택하게 됩니다.


원령 공주의 배경이된 시라카미 산

미술 담당이던 오가 가즈오는 아시타카가 사는 에미시 마을의 모델이된 시라 카미 산지와 아오모리 현의 아지 가사와 정, 쓰가루 고개, 텐구 고개등을 취재하며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시대 고증에 일부 오류가 있는데 당시 여성의 헤어 스타일은 포니 테일이었는데 본작에서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일본의 역사학자인 아미노 요시히코가 지적을 했습니다. 이에대해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고증의 완벽함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거의 완성될 무렵인 어느날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미야자기가 찾아와서 "제목을 아시타카로 바꾸자"라는 제안을 했는데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직감적으로 원령 공주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원령공주로 강행을 하고 제작을 했고, 추후 미야자키는 제목이 변경되지 않은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미야자키는 이작품을 통해 한센병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패니메이션 및 일본 덕후들에 대한 일침  라노벨에서 일러스트란?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디자인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