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검은 17세기 프랑스의 바욘에서 농민끼리 싸움을 벌이다가 우연히 발명 되었다고 합니다. 싸우던 중에 흥분한 농민이 소총의 총구에 칼을 꽂고 상대에게 공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발명된 지명의 이름을 따서 총검을 프랑스어로 바요네트 (baionnette : 프랑스어) 또는 바요넷 (bayonet : 영어)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후 총과 도검을 결합시킨 무기는 여러 나라에서 제작이 이루어 졌는데 당시 소총은 약 100 미터의 짧은 유효 사격 거리를 가지고 있었고, 발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발사 간격이 길었습니다. 따라서 사격 과정에서 적의 보병과 기병의 돌격을 받을 우려가 커서 근접전투를 위한 무기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파이크를 들고 행렬 하는 가장 행렬
이 때문에 당시는 총을 가진 군인의 곁에는 항상 파이크 (창을 닮은 긴 막대 모양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창병을 배치 시켜야 했지만 총검의 채용으로 적의 보병과 기병의 돌격을 총병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로 인하여 역할 없어진 창병은 총병으로 보직이 변경되었으며 이것은 전투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 기병의 돌격을 받은 영국군 소총병이 사각형 대형을 짜고 총검을 들이 미는 것으로 간단히 막을 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말이 전장에서 날카로운 물체에 돌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었습니다.
19세기에 사용된 창형 대검
소켓형 장착 방식의 '창형'과 서바이벌 나이프 모양의 '검형'이렇게 두가지 형태가 있고, 소켓식의 것을 특히 '총창'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총구에 연결 사용해는 소켓형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다음 탄을 장전할 수가 없고, 적을 찌르고 난 뒤 끼인 부분이 쉽게 빠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19세기에 사용된 검형 대검
이것 개량하기 위해 총 오른쪽에 검을 장착하는 형태로 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총이 뒤떨어진 전장식이었기 때문에, 장전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오른쪽에 장착하는 형태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의 총검 사용 모습
그 후, 총구의 하단에 총검 장착 틀이 설치되기 시작했고, 창 형도 일부 사용되지만 대부분은 칼 모양이며 찌르고 베는 것 모두 가능한 모델이 채용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