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의 최후 (헤르만 보글 作,1882년)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기원전 73년에서 기원전 71년에 걸쳐 로마 공화정 시대에 이탈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로마군과 검투사 노예간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세차례 있었던 노예 전쟁중 마지막이자 최대 규모의 것으로 검투사들의 지도자인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을 따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또는 스파르타쿠스의 난이라고도 불립니다.
스파르타쿠스
카푸아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한 약 70명의 검투사 노예 집단은 스파르타쿠스를 지도자로 하여 남자,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12만명까지 늘어나 이탈리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격을 합니다. 이 노예 집단은 놀라운 전투려을 발휘하면서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군의 민병대 그리고 집정관이 이끄는 군단까지 모조리 격퇴했습니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도망 노예들의 목적은 주인의 손에서 해방되 갈리아 키 살피나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또다른 역사학자 아피아누스는 검투사 노예들은 로마 진군이 목적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로마의 원로원은 검투사 노예들에 대한 연전 연패와 약탈행위에 위기감을 느껴 8개 군단을 동원해 그 지휘권을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게 맡겼습니다.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군은 크라수스의 군단에 의해 이탈리아 반도 최남단인 칼라브리아에 봉쇄되고 맙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남아있는 병력 전체를 결집시켜 크라수스와 정면 승부를 펼치지만 결국 패배하고 전멸당했습니다.
이 검투사들의 반란 내용에 대해 자세히 기록된 고전 사료에는 플루타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아피아누스의 로마의 역사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근세 이후 볼테르와 칼 마르크스 그리고 블라디미르 레닌 같은 사상가와 혁명가들로 부터 올바른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고 지도자였던 스파르타쿠스는 탄압으로 부터 해방을 원하던 노동자 계급의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