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컴은 1975년 5월 2일, 런던 북동부에 위치한 레이턴 스톤에서 배관공 아버지 데이비드 에드워드 베컴과 미용사 어머니 산드라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가족은 더 북쪽에 위치한 칭포드로 이사 했고 베컴은 여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형제는 누나와(1972년-)와 여동생(1980년 -)이 있습니다.
베컴의 외할아버지는 유대인으로 베컴은 자신을 "절반의 유대인 (half Jewish)"이라고 칭하는데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다른 종교보다 유대교와의 접촉이 많았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07 년 인터뷰에서 베컴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어른이되면 뭐가되고 싶니?'라고 물을 때마다 '축구 선수'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아니 그게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일이 하고 싶은 건지를 물어보는 거야.'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장래에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1982 년에 창설된지 얼마안된 웨이 로버스 (현재 브림즈다운 로버스 FC)에 입단한 베컴은 3 시즌 115 경기에 출전 해 101 골을 기록했고, 1986 년에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에서 권유도 받았지만 시기상조라는 판단 아래 6년간 더 머물게 됩니다. 학교 경기에도 참가한 베컴은 이후 지역 및 국가 대표로 선출됩니다.
또한 1985 년과 1986 년 보비 찰턴이 주재하는 전국 규모의 축구 교실에 참가하기도 했고, 1986 년에 실시된 기술 테스트에서 런던 지구에서 우승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의 구 연습장과 올드 트라 포드에서 열린 결승전에서는 지난 6 년간의 최고 득점을 올리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입상 상금은 바르셀로나에서의 2 주간 합동 훈련이었습니다.
런던 북부의 여러 클럽에서 권유 받던 베컴은 토트넘 핫스퍼의 양성 스쿨에 매주 월요일마다 다니고 있었지만 1988년 5월 2일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의 학생 멤버가 되었고, 1991년 7월 8일 에 계약금 29.50 파운드 + 주급 10 파운드의 수당으로 연습생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1992 년 5 월, 연습생 1년차 시절 17세 이하의 선수로 구성된 FA 유스컵 참가해 우승했습니다. 당초 체력에 문제가 있었던 베컴은 선발에 빠져있었지만 오른쪽 사이드 하프를 담당하고 있었던 키스 질레 스피가 전선으로 이동하기 됨에 따라 출전 기회를 얻게되 결승전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1 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습니다.▶마라도나와 펠레,메시와의 관계 ▶피파가 월드컵 우승국과 참가국에게 주는 상금은 얼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