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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전체주의에 빠진 소련의 공산주의


칼 마르크스(1818.5.5 ~ 1883.3.14)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고, 공산주의 사회의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보다 우월하다는 고찰과 증명은 그 어디에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파시즘과 전체주의


레닌(1870.4.22 ~ 1924.1.21)

마르크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레닌과 스탈린이 만든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는 공산주의를 과학이라고 지칭하면서 다른 이데올로기를 비과학적, 반혁명적인 것이라 규정하고 탄압에 들어갑니다. 레닌은 비밀경찰인 체카를 만들고 반혁명적이라고 판단한 인사들에 대한 처형을 감행했고, 스탈린도 대숙청을 통해 반혁명 분자들과 반대파 당원 150만명을 체포 했고 그중 70만명을 처형했습니다. 


스탈린(1879.12.21 ~ 1953.3.5)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커녕 결국 인민의 자유를 억압했고 겉으로는 계급 철폐를 주장했지만 당 관료라는 위선적인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부의 공정한 분배가 아닌 특권 계급에만 집중시키는 포스트 전체주의를 지향했습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9. 29 ~ 1973.10.10 )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폰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은 집산주의이며 계획 경제와 더불어 이러한 이념들이 독재와 전체주의로 빠지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나 아렌트(1906. 10. 14  ~ 1975.12.4)

<전체주의의 기원>과 <혁명에 대해>를 집필한 한나 아렌트도 "사회적인 문제인 인민의 빈곤을 정치적 무기로 삼아 대숙청을 자행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프랑스의 정치 철학자인 클로드 르포도 "소련의 체제는 나치와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인 전체주의였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미셸 푸코(1926. 10. 15 ~ 1984. 6. 25)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등을 집필한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셀 푸코는 "마르크스 주의는 권력의 한 양태나 다름없고, 정치적인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1928. 3. 28 ~)

정치학자이자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이 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공산주의와 파시즘, 나치즘은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고 정치적으로도 유사하다. 모두 산업 시대의 심각한 문제인 수백만명의 빈곤한 노동자의 출현과 초기 자본주의의 불공평함으로 인한 계급간의 대립등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것이다. 사회적 증오를 사회 정의라는 이념으로 포장해 사회를 구제하려는 수단으로서 국가의 조직된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비에트 러시아의 전쟁은 같은 이념을 갖고 있던 형제끼리의 전쟁이었고, 스탈린도 나치였으며, 히틀러도 레닌 주의자였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소련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미하일S.보스렌 스키는 "소련의 사회주의가 모든 생산 수단을 국유화하고 소유에 대한 법적 형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 수단의 소유를 통한 지배, 피지배의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 소련에서 공산당원 1700만명중 4퍼센트인 70만명이 지도층을 선출하는 노멘클라투라를 이루고 생산 수단을 초독점적으로 관리하며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한 일당 독재에 의한 관료제 국가다."라는 말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