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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예언자로서 성공한 노스트라 다무스


-노스트라 다무스의 예언서


예언집 초판

노스트라다무스는 47살 되던 1550년에 앞으로의 1년을 예언한 역서를 출간하며 예연자로서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합니다. 역서가 많은 인기를 끌면서 노스트라 다무스는 더 앞의 미래를 내다본 예언서 집필에 착수합니다. 1555년 5월에 초판이 나온 '미셸 노스트라 다무스의 예언집'은 4권의 중간까지 밖에 없는 미완성판이 었지만 대중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국왕의 초대

앙리2세

역서와 예언집의 출간으로 명성을 얻게된 노스트라 다무스는 국왕인 앙리2세와 왕비 카트린드 메디시스의 초대를 받게 됩니다. 알현과 더불어 회견이 열렸는데 회견 내용은 불명이지만 노스트라 다무스가 쓴 예언을 토대로 그의 예언능력을 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는 노스트라다무스를 개인적으로 불러 자신의 아이들의 미래를 점쳐보라고 명령을 했고, "네명의 아이 모두 왕이 될것"이라는 노스트라 다무스의 답변을 얻었다고 합니다. 넷째 에르퀼이 요절하면서 이 예언이 틀린 것이 되었지만 "네명의 왕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설도 존재해 이경우라면 셋째였던 앙리가 프랑스의 왕이 되기전에 폴란드의 왕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베네치아 대사인 조반니 미키에리가 1561년에 정리한 보고서등에 따르면 당시 궁정에는 노스트라 다무스의 "왕자들이 다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퍼져있었다고 되어 있으며, "네명의 왕이 나올것"이라는 예언은 확인된바가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언과 검증


1559년 6월 30일 앙리 2세의 여동생인 마르그리트와 딸 엘리자베스가 각각 결혼을 하면서 열린 축하 연회의 마상 시합에서 앙리 2세는 상대였던 몬고무리 백작의 창이 오른쪽 눈에 박히는 치명상을 입어 같은해 7월10일 사망하게 됩니다. 


 몬고무리 백작

노스트라 다무스의 예언집 백 시편 제1권 35번에는 이 사건을 예언한 듯한 다음과 같은 4행시가 있습니다.


"젊은 사자는 늙은 사자를 이길것이다. 

전장의 전투에서 

그는 황금 바구니(투구)속의 눈이 부서질 것이다. 

일격에 두군데의 상처를 입고 끔찍하게 죽을것이다."


이것은 노스트라 다무스의 가장 많이 알려진 예언이지만 1803년 서지 학자인 프랑수아 뷰제이는 그 사실과 맥락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반박을 했습니다. 뷰제는 먼저 국왕도 백작도 공식 문서에서 '사자'라고 표현된 적이 없고, 앙리2세와 몬고무리 백작의 나이차이도 7 - 11세로 젊은과 늙음 정도의 차이가 아니었으며 시합에 대해 전장이라는 비유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스트라 다무스 자신도 역서를 통해 왕과 왕비에서 보낸 헌사에 이 사건이 일어난 1559년을 '평화적인 한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갈레노스의 석의


1557년에는 의학서이자 철학서인 '갈레노스의 석의'를 간행했고 이후 의사로서의 활동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559년 그가 내린 처방전 기록이 존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전염병 치료등 의사로서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