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바이킹스 中
바이킹은 바이킹 시대(800년 - 1050년)라는 약 250년동안 서유럽 연해를 침략한 스칸디나비아 , 발트 해 연안 지역의 무장 선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미드 바이킹스 中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바이킹은 '당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발트 해 연안에 살던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변화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노르만이라고도 불리고 중세 유럽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서양 생활 양식과 개인주의 사상은 바이킹들의 이데올로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이킹이 처음부터 해적이나 교역 , 식민지에 대한 약탈 경제를 생업으로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노르웨이의 고고학자인 헤위에르달에 따르면 원래는 농민과 어민들이었다고 합니다.
바이킹들의 수익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교역이었다는 연구결과로 볼때 바이킹에게 있어 항해의 주된 목적은 교역이었고, 약탈이 오히려 예외적인 행위였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그들의 주요 교역지는 브리튼 제도 , 이베리아 반도 , 이탈리아 반도 , 발칸 반도 , 유럽 러시아 ,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아프리카 , 서아시아 등이었습니다.
■ 왜 바이킹은 해적이 되어 주변국을 침략했을까?
바이킹들의 침략은 중세 온난기 ( 10세기 - 14세기 )을 비롯하여 소 빙하기 ( 14세기 중반 - 19세기 중반)에 수렴하고 있지만, 그 직접적인 계기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고, 일부 학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1.기독교와 종교 갈등
바이킹 시대가 시작되는 때는 작센 전쟁, 즉 기독교와 이교도 간에 전쟁이 일어난 시대와 일치합니다. 역사가인 루돌프 시메크(Rudolf Simek)와 브루노 더메질(Bruno Dumezil)은 바이킹들의 침략은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루돌프 교수는 "초기 바이킹의 활동이 카롤루스 대제의 통치 시대와 때를 같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기독교를 앞세우며 많은 국가를 침공했고, 스칸디나비아도 그러한 위협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미드 바이킹스 中
기독교의 침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큰 문제가 되었고, 노르웨이는 그때문에 1세기에 걸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통상이나 무역에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기독교인에 의한 불평등한 조건을 강요받고 있었고, 명예가 더럽혀지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마다치 않는 바이킹의 문화에서 위와 같은 원인으로 침략을 감행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2.기술적 우위에 따른 침공
미드 바이킹스 中
바이킹은 통상 무역을 업으로하고 있던 민족입니다. 중세 유럽이 암흑시대일 때에도 동아시아나 중동과도 교류하고 있었고, 항해술뿐만 아니라 지리적 지식,산업 기술,군사적 기술도 주변 유럽 국가들을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바이킹들의 항해 능력이 다른 민족들 대비 우월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웃 나라들을 침략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3.기타 설명
인구 과잉을 원인으로 보는 학설도 있습니다. 추운 기후 때문에 토지의 생산성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식량 부족이 발생하게 되자 평지가 적은 산악 노르웨이인들은 해상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고, 덴마크는 평탄지는 있었지만, 토지 자체가 좁았습니다. 스웨덴은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마을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비옥한 토지가 아니었고, 북쪽은 툰드라 지대였습니다. 이 때문에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약탈 및 교역, 이주가 활발하게 되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인구 과잉이 일어난 원인은 중세 온난기 때문이란 설이 있는데 온난화 덕분으로 북유럽의 토지 생산성이 올라갔지만, 출산율이 그것을 초과해 상승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는 학설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