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1564년 2월 15일 - 1642년 1월 8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 천문학자 , 철학자로서 파도바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고,천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저 베이컨과 함께 과학 기술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사 대성당에서 흔들리는 샹들리에(향로였다는 주장도 있음)를 보고 진자의 등시성 (동일한 길이의 줄에 메달려있는 물건의 무게가 어떻든 왕복에 걸리는 시간은 같다.)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그의 사후 전해진 일화일 뿐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이 법칙을 발견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갈릴레오는 이 법칙을 이용하여 말년 진자 시계를 고안했으나 실제로 제작에 돌입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갈릴레오는 낙하운동 법칙도 발견 했는데 이 법칙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는 물체가 자유 낙하 할 때의 시간은 낙하하는 물체의 질량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물체가 낙하 할 때 떨어지는 거리는 낙하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무게가 다른 두종류의 공을 동시에 떨어뜨려 두개가 동시에 착지하는 실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유명한 일화는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빈센조 비비아니가 만들어낸것이고, 실제로는 그와같은 실험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갈릴레이에 앞서 낙하 운동의 법칙을 발견했던 네덜란드 사람 시몬 스테빈의 실험과 혼동한 사람들에 의해 후세에 전해진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갈릴레오가 한것으로 알려진 실험은 비스듬히 놓인 레일에 무게는 다르지만 크기가 같은 공을 굴리는 실험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게에 따라 낙하 속도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 실험은 실제로 그린 그림이 남아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체계는 무거운 것 일수록 빨리 떨어지는 것으로되어 있었기 때문에, 갈릴레오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연구자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논쟁에서 갈릴레오는 1개의 물체를 떨어뜨렸을 때와 같은 물체 2개를 묶어 떨어뜨렸을때 낙하 속도가 같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합니다.
■ 갈릴레오의 실패
1.
케플러의 법칙이 발표되었지만 갈릴레오는 여전히 "모든 천체는 완전한 원형을 그리며 운동한다"는 주장을 꺽지 않았고, "타원운동을 할 리가 없다"라며 케플러를 은근히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생각에 여전히 묶여 있던 시대의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케플러의 타원 궤도에 따라 행성의 위치 예보가되는 시대가 되어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2.
지동설의 증거로 갯벌을 꼽았습니다. 사실, 달과 태양의 중력이 원인이었지만 갈릴레오 시대의 과학은 아직 설명 할 수없는 현상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갯벌 이야말로 지동설의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주장은 당시 알려진 과학적 사실과도 일치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만약 갈릴레오의 이론이 맞다면, 만조는 하루에 1 번 밖에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보통 2회 정도 일어납니다. 갈릴레오는 만조가 두번 일어나는 것은 지형이 가져다준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