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파동은 1973년(제1차)과 1979년(제2차)에 시작되어 1980년에 피크에 달한 원유 공급 부족과 유가 상승에 따른 세계 경제의 혼란 사태를 의미합니다.
석유 파동이후 선진국의 경제가 중동의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때문에 북해 유전등이 적극적으로 개발 운영되었고 원자력이나 풍력, 태양광등 비 석유 에너지의 활용이 추진되었으며 에너지 절약 기술의 연구 개발 촉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석유 비축 체제 강화도 이루어졌고 자동차가 대중화 됨에 따라 자동차 보다 철도나 버스를 비롯한 대중 교통을 재평가 하는 등의 움직임도 일어났습니다.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1975년 제1차 석유 파동이후 경제 회복을 주요 의제로 선진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1회 주요국 정상회의가 프랑스의 랑부예성에서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1861년 부터 2011년까지의 유가 그래프.
100년 가까이 유지되던 가격이 1970년대에 들어와 두차례에 걸쳐 깨진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강화되었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났으며 1971년의 닉슨 쇼크와 겹쳐 전후 세계 경제의 성장 체제가 파괴되고 맙니다. 공업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로 대외 채무를 늘리고 있었던 남미와 아프리카등의 개발 도상국들은 석유 수입 비용이 급상승하여 유로 본드(신디케이트 론의 변동 유가증권)에 대한 차환을 강요 받게 되었습니다.
석유 수출국은 오일 머니를 얻고 자국 복지를 충실하게 하며 강력한 국부 펀드를 설립하기도 했는데 오일 머니의 출처는 OTD금융의 신용 예금 통화였습니다.
벤 버냉키는 고유가가 상품과 서비스의 비용을 인상시켜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게된 원인은 가계와 기업이 연방 준비 은행의 금융 긴축 정책이 충분치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버냉키는 그 결과 임금 인상 및 제품의 가격 인상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지하에서 솟아나는 불타는 물!석유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