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 '명예에는 의무가 따른다.'라는 의미이며 일반적으로 재산, 권력, 사회적 지위의 유지에는 책임이 동반됨을 가리킵니다.
■ 기원
패니 켐블
1837년 패니 켐블(영국의 여배우,저술가로 노예 제도 폐지 운동에 앞장섰다.)이 편지에 "귀족이 의무(noblesse oblige)를 져야 한다면 왕족은 더 많은 의무를 져야한다."고 썼던 것이 최초였습니다.
특권자들이 사회 소외 계층에게 의무를 다함으로써 적절한 경제적 균형을 유지 시켜야 한다는 모럴 이코노미(도덕 경제)나 부유층, 유명인사, 권력자, 고학력자가 사회적 모범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책임을 말할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일종의 심리적 자긍심 내지는 자부심이지만 사회적 압력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고 법적인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지키지 않았을 경우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사회적 비판이나 지탄을 받게 되거나 윤리성과 인격이 의심받게되는 사회적 불문율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 현실 사례
- 고대 로마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이 도로와 건물등의 인프라 정비에 돈을 지불해야 했는데 건설한 도로와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로마의 도로중 사장 유명한 도로인 '아피아 가도'는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인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카에쿠스'가 건설한 것입니다. 또한 포에니 전쟁때 로마 귀족들 다수가 참전해 카르타고 군대와 싸웠는데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은 자는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 우리나라
유일한
우리나라의 경우 거상 김만덕이 조선시대 기근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민을 위해 전재산으로 쌀을 구입해 나누어 주었고, 김좌진은 무장투쟁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을 펼쳤으며, 최재형도 군수업을 하며 모은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대부분 사용했습니다. 또한 경주의 최부잣집은 백리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을 그대로 실천한 인물이었고,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당시에 만행했던 정경유착이나 탈세등을 절대 하지 않았고 교육사업을 위해 유한 공업 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 영국
헨리왕자
영국에서는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귀족의 자제중에도 참전한 사람이 많았고, 포클랜드 분쟁때도 앤드류 왕자등이 영국군에 복무했습니다. 최근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윌리엄 왕자는 칠레에서, 헨리왕자는 레소토의 고아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윌리엄 왕자는 또 노숙자 지원사업의 후원자이기도 하며 스스로 노숙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헨리 왕자는 영국군에 입대해 적극적으로 전투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소탕작전에 극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미국
빌게이츠
미국에서는 빌게이츠가 전재산의 40%를 기부하는 등 유명인사들이 자원봉사나 기부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인데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상통하는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소위 CSR)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미국의 대학생은 징병제에서 벗어난 그룹이었지만 참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 멜론 대학교나 은행가인 존스 홉킨스가 세운 존스 홉킨스 대학교등이 존재합니다.
■ 피해 사례
-황필상
황필상씨는 2002년 200억원대의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부를 했지만 6년뒤 세무서로 부터 140억원의 세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상속,증여세법 48조에 '회사 주식 5%이상 기부받으면 공익재단이라도 증여세를 내야된다.'라는 조항에 따른 것으로 황필상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했지만 1심은 장학재단의 손을,2심은 세무서의 손을 들어주 었습니다. 현재 황필상씨가 내야될 세금은 가산세를 합쳐 기부금 보다도 많은 225억원이된 상태입니다. 세무서나 사법부에서도 황필상씨가 편법 증여를 위해 기부를 한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와같은 일이 벌어진것은 법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남기석
독일에 광부로 파견을 나갔다가 나치 독일의 고위 간부집을 경매로 받게된 남기석씨는 집 지하실의 소파와 양탄자 밑에서 현재가치로 500억원에 달하는 금괴와 현금을 발견해 소유권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는 이 돈으로 구입한 골동품 수백여점을 우리나라 학생들이 외국의 문화를 배우는 데 써달라며 청주시의 박물관에 기증을 했지만 20년뒤 전시된 골동품 대부분이 관리 소홀로 훼손되거나 도난당했고, 시장이 바뀌면서 청주시로 부터 약속 받은 매점도 빼앗기게되 현재는 기초수급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플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