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

미국 남북 전쟁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알아봅시다.

남북 전쟁의 단초가된 섬터 요새전투

당시 미국 남부와 북부는 경제 · 사회 · 정치적 차이가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남부에서는 농업 중심의 플랜테이션 경제가 번성하고 특히 대량의 면화를 유럽에 수출했는데 이런 플랜테이션 경제는 흑인 노동자 노예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면화를 따고 있는 노예들의 모습

농장 소유자가 실질적으로 남부를 지배했고, 남부의 면화 재배의 급속한 발전은 영국 면 공업의 발전에 따라 증가한 면화 수요에 힘 입은 것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무역을 통해 남부는 계속 이익을 내고 싶어했습니다.


파란색은 북부주, 빨간색은 남부주

이에 반해 북부에서는 미영 전쟁 ( 1812 년 - 1814 년 )에 의한 영국 공업 제품의 단절로 오히려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새로운 유동적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노예제를 반대했습니다. 또한 유럽산 공업 제품 보다 경쟁력 우위 유지하기 위해 보호 무역을 추진하길 원했습니다. 이렇듯 북부는 노예제에 대한 태도와 무역에 대한 태도 모두 남부와 의견을 달리했고 북부의 (노예)자유와 남부의 노예주의 대립이 점점 강화되어 갔습니다


이 대립은 예기치 못하게 미국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더 심각해 집니다. 재정난에 빠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를 구입함과 더불어 멕시코로 부터 독립한 텍사스 공화국과 캘리포니아 공화국이 미국의 영토가 된것인데 이로인해 그때까지 상원에서 유지되고 있던 자유 북부와 노예 남부의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등에 채찍을 맞은 노예

캘리포니아는 자유주로, 뉴 멕시코 준주 , 유타 준주에 대해서는 주로 승격 할 때 주민 스스로가 노예주 또는 자유주를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남부는 자유주 측에 상원 의원 수가 많아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는데 참고로 개전 시점에서 북부의 인구는 약 2200 만, 남부의 인구는 약 900 만이었습니다. 게다가 남부의 이 인구는 약 400 만 노예의 인구를 포함한 숫자입니다.


이러한 대립은 점차 첨예화 되었고, 1857 년 이후엔 미국은 드레드 스콧 대 샌포드 사건의 판결, 캔자스 네브래스카 법 , 퍼스 페리 습격 사건 등의 문제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남북의 대립은 더이상 진화가 불가능한 지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북부에서는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새로운 정당인 공화당이 급속히 지지를 확대하는 한편 여당인 민주당은 북부와 남부의 대립이 격화되고 당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