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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문화 수준이 높았던 아프리카 흑인들이 인종차별을 받고 노예가 된 이유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던 흑인은 고대의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에게 노예로 취급되었을 때부터 인종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슬람권의 위대한 철학자인 이븐 할둔 조차도 흑인을 차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 무하마드 시대 이전에 아랍인 지파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부족 간의 다툼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강 건너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는 흑인 대제국이 존재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게 아랍이 침략을 받은 일도 있었고, 에티오피아에게 보호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랍인에게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 아닌 자신들보다 문화 수준이 높은, 경외해야 할 인종이라는 인식을 가진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랍 여러 민족은 흑인 노예를 소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흑인는 어디 까지나 노예의 일부였으며 노예의 대부분은 같은 아랍 지파의 전쟁 포로와 해적에 납치되거나 노예 상인에게 팔린 한 유럽계 주민들이었으며, 백인이 노예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바스 왕조 시대에는 남부 이라크의 대규모 농업에서 사역하고 있던 흑인 노예가 가혹한 노동 환경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습니다.(잔주의 난)


대항해 시대 이후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노동력으로 흑인 노예들을 사역했습니다. 유럽인은 주로 서쪽 ~ 중앙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을 노예로 데려왔는데 처음에는 '신대륙'에서의 집약 대량 생산을 위해 '신대륙'의 원주민을 노예로 이용했지만 유럽인들이 들여온 전염병 때문에 많은 원주민들이 죽게 되자 대체 인력이 필요했고, 흑인은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적임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흑인이 외모적인 특징에서 비노예와의 구별이 쉬웠던 것도 이유가 되었습니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식민지 지배하는 것은 19 세기말 이후의 일이며, 아프리카 지역 국가와 유력 부족장이 적대 부족의 사람을 잡아 다가 유럽인에 노예로 팔아 이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유럽인은 구입한 흑인 노예들을 선박의 화물칸에 실어 신대륙 등의 시장에 수송 했고, 노예선의 환경이 매우 가혹했기 때문에 시장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하는 흑인도 상당한 비율에 달했으며 겨우 살아남은 흑인들은 노예 시장에서 상품으로 테이블 위에 진열되어 판매되며 인격을 부정당하고 가축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가벼운 가내 노동에 종사하거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러한 유럽의 노예 제도는 1888 년에 브라질이 노예 제도를 폐지 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시아의 노예제도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