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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월트 디즈니,만화가에서 애니메이터로 전직하다.




월드 디즈니사의 창립자 월트 디즈니(1901 - 1966년)

월트 디즈니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애니메이터이자 프로듀서, 영화감독, 작가,성우,엔터테이너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키 마우스의 창작자이며 형 로이 디즈니와 공동으로 설립한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 만화가에서 애니메이터로 전직


1920년 1월 월트 디즈니와 친구 아이 웍스는 디자인 회사 월트 아이 웍스 컴퍼니를 설립해 동업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매출이 신통치 않았고 설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월트 디즈니는 캔자스 필름사에 애니메이터로 취직해 회사는 문을 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만화가가 아니라 애니메이터로 취직을 한것이 었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담당하면서 애니메이터로서의 자질에 눈을 뜨고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직원으로서 일하는 것 외에도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장비를 따로 구입해 제작에 몰두했고, 지금까지의 컷 방식 보다 셀 애니메이션에 더 가능성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1922년에 제작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1920년 독립해 개인 사무소를 설립한 월트는 프리랜서 제작자가 되어 캔자스 시티의 사업가 프랭크 L 뉴먼의 투자를 받아 첫 오리지날 애니메이션 작품인 '뉴먼 극장 개그 만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훌륭한 오락 애니메이션이라는 대중의 좋은 평가를 받아 이후 많은 애니메이션 일감들이 쇄도하게 됩니다. 개인 제작만으로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월트 디즈니는 개인 사무실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친구인 아이웍스와 휴 허먼,루돌프 아이징등 몇명의 애니메이터 동료들을 모았습니다.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설립한 '래프 오'그램 스튜디오'는 그의 첫번째 성공이긴 했지만 너무 제작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금 회전에 문제가 생겨 결국 스튜디오는 파산하고 맙니다. 이것은 월트 디즈니가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히 느끼게 만든 사건 이었습니다. 파산 후 모든 정리를 마친 월트는 재기를 꾀하며 영화 산업의 본고장인 할리우드로 이주합니다.


■ 디즈니의 창립과 위기, 지키지 못한 오스왈드 캐릭터


월트 디즈니는 할리우드에서 형 로이 디즈니와 함께 디즈니 브라더스사를 창립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를 선보이고 아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으며  경영의 안정궤도에 오릅니다. 1927년 찰스 B 민츠의 소개로 유니버셜 픽쳐스와 연을 맺은 디즈니는 자사 캐릭터인 오스왈드를 주인공으로 한 오스왈드 더 럭키 래빗 애니메이션을 유니버셜 픽쳐스를 배급사로 제작에 들어갑니다. 오스왈드 시리즈는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히트를 치며 디즈니사가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월트는 첫 직장이었던 캔자스 필름에서 만난 동료들을 잇달아 회사로 스카웃하며 디즈니는 미국에서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로 급성장합니다.


미키 마우스 이전 월트 디즈니의 간판 캐릭터 였던 오스왈드

하지만 1928년 2월 찰스 B 민츠와의 계약 수수료 때문에 큰 비극을 겪게되는데 민츠는 월트 디즈니에게 유니버셜 사에 엄청난 배급 수수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했고 이를 월트가 거절하면서 민츠는 노골적으로 월트 디즈니의 직원들을 스카웃해가기 시작합니다. 월트를 낙담시킨 것은 믿었던 애니메이터 동료들이 친구 아이 웍스를 제외하고 모두 유니버셜 픽쳐스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계약서상 오스왈드 캐릭터가 배급사의 관리하에 놓여 있던 것도 불리하게 작용해 디즈니사는 자사 캐릭터와 직원의 대부분을 잃고 파산 직전에 몰립니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는 포기하지 않고 젊은 시절 그랬듯이 아이 웍스와 함께 이인삼각이 되어 디즈니 재건에 착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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