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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 뒷이야기,미야자키 하야오와 작화감독의 대립등



센과 치히로 행방불명의 작화감독에 안도 마사시가 기용이 되었는데 그는 26살에 원령공주의 작화감독을 맡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에 따르면 안도가 원령 공주 제작 종료 이후에 스튜디오 지브리에 사표를 낸것을 겨우 만류 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표를 낸 이유는 미야자키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이상화하고 데포르메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리얼리즘을 추구 하는 안도는 영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정확성을 희생시키는 것을 원치 않아해 지향점의 차이로 인한 대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77)

일본은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할때 원화 수정은 작화 감독에 의해 진행이 되고 감독은 직접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의 경우에는 미야자키가 애니메이터로서 전체의 작화 작업을 총광하고 원화 그림, 애니메이션, 매수 등을 먼저 다시 그립니다. 이후 작화 감독은 미야자키가 거칠게 그려놓은 것을 수정하는 작업을 맡게 됩니다. 


안도는 원령 공주 공개 이후 인터뷰에서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작화 감독이라는 직책으로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정때문에 스즈키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기작인 '연극'에서 안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작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습니다.


미야자키 자신도 원령 공주의 제작 당시 고령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섬세한 작화 수정 작업을 담당할 수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 작화의 재량을 안도에게 맡겼습니다. 더불어 연출까지도 안도에게 맡기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전 미야자키가 콘티를 그렸던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작화 감독이 었던 곤도 요시 후미가 감독을 담당했던 것처럼 비슷한 체제가 취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안도는 미야자키가 그린 콘티로 연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결국 미야자키가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화 제작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37인이 동원이 되었는데 당시 지브리 사내의 원화 팀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취약한 상태 였고 특히 중견 애니메이터 층이 얇았습니다. 이외에도,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콘티에 없는 표현을 도입하고 싶다는 안도의 의견도 있어서 오오 히라 신야, 야마시타 아키히코등의 실력파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들도 참여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영상에 대한 체크 수석은 '이웃집 토토로' 부터 '바람이 분다'까지 모든 미야자키 감독 작품의 영상 체크를 맡았던 갓 히토미가 맡았고, 영상 체크팀은 일본 국내에서 99명, 한국 외주 직원이 27명, 도합 126명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감사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원령공주의 제작 뒷이야기.

일본 덕후들에게 일침을 날린 미야자키하야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