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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히틀러와 아버지의 관계

히틀러의 아버지 로이스

어머니 클라라와의 관계는 양호 했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 로이스와의 관계는 매우 나빴습니다. 로이스는 일자리를 잃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농업 사업에 실패한 화풀이로 종종 히틀러에게 채찍 체벌을 내리곤 했습니다. 


히틀러 생가

로이스는 이후 세관 사무관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문맹인 자신이 그와같은 직업을 갖게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히틀러도 자라서 세관 세무관이 되길 바랬습니다. 추후 히틀러는 아버지가 억지로 자신을 세관 사무국에 데려갔을때의 일을 아버지와의 대립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11살의 히틀러(가운데), 초등학교 졸업사진 

중등 교육을 받을 때(12살)가 되자 히틀러는 김나지움(대학 예비 과정)을 가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 로이스는 레알 슈레(실업 중등 학교)에 강제로 입학을 시켰습니다.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에 따르면 히틀러는 실업 학교에서 수업을 일부러 빠지며 아버지에게 저항했지만 성적이 떨어져도 결코 로이스는 히틀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히틀러가 처음 독일 민족주의와 대독일주의에 경도 된 것이 이무렵 부터라고 여겨지고 있는데 아버지 알 로이스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지지자였으며 대립각에 있던 과격한 대독일주의를 혐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인들도 대부분 아버지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히틀러는 아버지에 대한 반함감으로 대독일주의를 지지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은 '잡종 집단'이라고 주장하며 동창생들에게 대독일주의를 선전하고 그룹을 만들어 '하일'인사를 사용하거나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국가가 아닌 '세계에서 으뜸가는 독일 제국'을 국가로 노래하라는 호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실업학교를 갔다는 히틀러의 주장에는 말이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세무관이 되기 위해서는 법학을 배울 필요가 있었는데 당시엔 독일 법률을 배우기 위해서는 라틴어가 필수 였습니다. 하지만 실업 학교는 김나지움과 달리 라틴어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로이스가 히틀러를 정말 세무관으로 만들 예정이었다면 김나지움에 입학을 시켰어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김나지움에 진학하지 못한것은 단순히 히틀러의 학력부족 때문이었고 아버지 로이스는 성적이 모자란 아들 걱정에 실업 학교에 진학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골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히틀러는 도시의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어 실업 학교 1학년때 필수 과목인 수학시험에 떨어져 유급이 되었고 그 다음해에 2학년으로 진학을 했지만 학년말에 또다시 수학 시험에 떨어져 재시험을 치르고 나서 겨우 3학년에 진학했습니다. 


히틀러가 14살이 되던해에 아버지 알 로이스가 식당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65세의 나이로 사망을 했고 현지의 명사였던 로이스의 죽음은 지역 신문 기사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같은해 히틀러는 외국어 시험에 불합격해서 두번째 유급처분을 받아 4학년으로 진학을 못하고 퇴학처분을 받게 됩니다.


퇴학후 린츠 근교에 있던 슈타이어시의 실과 중등 학교4학년에 복학했지만 이곳에서도 국어와 수학, 기하학에서 불합격을 받습니다. 사생활에서도 술집을 갔던게 걸려 교사들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었고, 결국 학교를 가지 않지 않으며 질병 요양등을 이유로 학교를 관두게 됩니다.


히틀러가 유일하게 정식 교육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뿐이었고, 자신이 싫어하던 문맹인 아버지와 같은 학력을 갖게된 것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싹을 자르고 싶어했던 처칠

패전 직전까지도 각 가정에 우유를 배달시킨 히틀러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든 괴벨스